재단법인 이에이에이에프피


보도자료

생명의 하천 차탄천, 어느 겨울의 기록

2021. 12. 12. 재두루미 가족. ⓒ이수영

재두루미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국가적색목록 멸종위기종,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 취약종이다. 이 재두루미 가족은 겨우내 차탄천 인근 논에서 먹이활동을 했는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2022. 1. 9. 검은등할미새, 삑삑도요, 흰목물떼새가 함께 있는 모습. ⓒ백승광

대백로, 검은등할미새, 삑삑도요는 일정한 거리마다 눈에 띄었다. 삑삑도요는 많게는 6마리까지 함께 있었다. 흰목물떼새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으로, 검은등할미새와 삑삑도요와 함께, 이날 한참 동안 평화롭게 먹이를 찾아 먹었다.

2022. 3. 27. 마지막 모니터링. ⓒ백승광

총 20회의 정기 모니터링 가운데 15회 이상 성실히 참여한 구성원들의 뿌듯함과 보람은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차탄천의 터주였던 겨울 손님 대백로를 처음으로 한 마리도 보지 못한 이날, 여름 손님 중대백로가 번식깃을 나풀거리며 홀연히 눈앞에 나타났다. 반년의 장기 프로젝트를 마치는 이들에게도 시민과학자라는 장식깃이 생겨났을까.

경기도 연천군은 유네스코 한탄강 세계지질공원과 유네스코 임진강 생물권보전지역을 자랑한다. 연천지질생태네트워크는 연천의 자연환경과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해 연천군의 발전과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뜻을 함께하는 주민들이 2021년에 설립한 작은 단체이다.

재단법인 EAAFP 2021-2022 민간단체 지원사업으로서 한스자이델재단이 후원하는 특별공모 지원사업의 주제인 ‘대한민국 접경지역의 생태연구’는 주요 활동 목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동성 물새 연구와 모니터링, 생물다양성과 생태계서비스에 대한 인식 증진을 목표로 “차탄천 겨울철새 모니터링 및 시민과학자 육성교육”을 계획하였다.

사업은 매주 1회 정기 모니터링 총 20회, 매월 1회의 시민과학자 육성교육 총 5회, 강원도 철원 DMZ두루미평화타운 견학 1회로 구성하였다. 중심 프로그램인 20회의 정기 모니터링은 한 회도 빠짐없이 평균 4~5인이 꾸준히 참여하여, 200% 이상의 사업 성공률을 거두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장량 씨는 “일정한 기간 동안 일정한 구간에서 같은 시간에 꾸준히 모니터링을 하면서, 꾸준함이 모니터링의 기본 조건임을 깨달았다”는 감상을 전했다. 그의 꾸준함은 야장기록에서도 이어졌다.

아직도 진행 중인, 그리고 지난해부터 더욱 급증세인 코로나 상황 탓에 매월 교육은 3회만 진행하였고 많은 주민의 참여가 어려웠다. 철원 견학은 알차게 진행되었지만 계획의 절반 정도의 인원만 참여하였다. 다수가 참여하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SNS 계정(인스타그램 @birds_korea_yeoncheon, 페이스북 @버드코리아 연천) 등을 통해 활동 내용, 조류 정보, 보전의 가치 등을 지역 내외에 전파하려 노력했다.

다수의 참여를 방해한 코로나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의 질적인 성장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40대와 50대가 대부분인 구성원들이 조류 및 생물다양성과 서식지에 대한 이해, 조류 식별 능력, 망원경과 필드스코프 사용 숙련, 카메라와 스마트폰을 이용한 기록 능력 등, 모니터링과 기록이 요구하는 다양한 영역의 기술과 태도를 갖추고 향상하는 과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자연에 대한 사랑, 차탄천의 재발견을 통해 연천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더욱 커진 것이 가장 큰 성과이리라. “새들의 노래와 먹이를 먹는 몸짓과 날아가는 모습이 경이롭고 아름다웠어요. 연천의 자연이 변함없이 새들에게 좋은 집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죠”라는 이수진 씨의 말이 증명하듯이.

차탄천은 강원도 철원군에서 연천군 신서면으로 흘러들어 연천군의 중심부인 연천읍을 지나 한탄강으로 합류하는 주요 하천이다. 차탄천 관련 학술적인 생태조사가 축적된 바가 없는 걸로 알고 있기에, 차탄천, 그중에서도 강원도와 가까운 구간을 모니터링 대상으로 정했다. 정기 모니터링을 통해 매주 변화하는 차탄천의 풍경과 조건을 체감하면서 총 50종의 조류를 기록하였다. 50종 가운데 거의 20%에 가까운 9종이 국내외 멸종위협, 멸종위기종이거나 보호종이었고, 이 밖에 국내에서 거의 보기 드문 희귀종 또한 관찰되었다.

정기 모니터링에서 기록된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국가 수준과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호종인데 연천군 차탄천 자체에 서식하는 건 아니다. 인근의 논에서 먹이활동을 할 뿐이지만, 경계심이 강하고 교란에 취약한 두루미류가 월동지에서 제대로 먹고 쉬는 것이 그 보전에 매우 중요함을 생각할 때, 차탄천 인근까지 다양한 생물종의 서식지로서 인식하고 그 보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물총새는 11월 28일까지 관찰되었다. 물총새는 여름철새로서 보통은 9월까지 관찰되고 소수가 월동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추운 곳에 속하는 연천에서 물총새가 월동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새와 생명의 터 대표 나일 무어스 박사는 “새들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늘 전략적 판단을 한다. 먹이가 풍부하고 안전한 곳이 있다면 굳이 멀리 날아가지 않고 머물기를 시도할 것이다”라고 알려준다.

물총새는 하천가 흙 벼랑에 터널과 같은 구멍을 파서 둥지를 짓는다. 차탄천의 거의 모든 구간은 이미 콘크리트를 입혀 놓아 흙 벼랑이 보이지 않는다. 물총새와 청호반새가 급감하는 이유는, 이렇듯 그들이 둥지를 지었던 곳들, 둥지를 지을 곳들이 싹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차탄천 군데군데 사람들의 여가활동을 위해서인 듯 하천 바닥까지 콘크리트 길을 놓거나 둑 주변을 꾸준히 콘크리트로 덮고 있었다. 하천의 자갈들 사이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흰목물떼새가 사라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또한 차탄천 양쪽으로 콘크리트 길과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사람과 차량이 쉼 없이 통행하며, 거의 모든 구간에서 사람들이 수시로 하천에 내려가 휴식을 즐겼다. 이는 하천을 서식지로 삼는 생명들이 안전하게 쉬고 먹고 새끼를 키울 곳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는 게 커다란 자연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초라하고 미련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탐조하던 곳을 지날 때마다 노래를 들려준 새 친구들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요”라는 김희송 씨의 말은 오랜 관찰의 축적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걱정이다.

하천은 사람의 여가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 소중한 생명들의 터전이므로 그것을 존중하는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 다양한 생명과 인간과의 관계를 성찰하며, 우리의 삶과 공간을 새로이 디자인하기 시작해야 한다.

물이 꽁꽁 어는 한파 때를 빼고는, 하천 곳곳에 촘촘한 그물을 설치하여 수산자원을 싹쓸이하는 행태 또한 자주 목격되었다. 해빙이 시작되던 3월 초에는 강원도 쪽에서 축산폐수로 보이는 것이 흘러 왔다. 몇 킬로미터에 걸쳐 악취를 풍기며 하천 바닥에 더럽고 두꺼운 더께를 덮어놓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삑삑도요는 늘 머무는 자리에서 먹이를 찾아 먹었다. .

지난 겨울은 이렇듯 발견의 기쁨과 감동뿐 아니라 아픔과 각성을 함께 전해 주었다. 그것은 결국 성찰, 성장, 성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전체 과정에서 교육자이자 안내자이자 후원자였던 백승광 씨는 “지역사회 내 소통이 필요한 시기에 이와 같은 지원 및 후원사업은 DMZ 일원 주민의 삶을 건강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교육과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 좋겠다”고 감회를 밝혔다. 장기 프로젝트를 함께 성실히 마무리한 구성원들이자 새와 생명의 터(Birds Korea) 회원들은 연천군의 생물다양성 보전과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꾸준한 노력과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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